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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신발 이야기, 커피 이야기 등록일 2016.09.30 04:1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22

이야기 그 하나, 커피

    

  무역한답시고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신발을 수출하던 70년대 후반,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옆에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바이어라고 부르는 코쟁이분이 오시면, 그 당시는

조선호텔이 사업용 호텔로 거의 유일했지요. 나는 입사 초년생으로 신발 견본을 들고 담당

과장을 따라 조선호텔에 가서 신발수출 상담을 하곤 했는데, 으리으리한 복도, 이불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 훌륭한 천을 바닥에 깔아 밟고 다니는 복도의 융단치장. 그 비싼

그림을 열쇠로 채워놓지 않았는데 벽에 하루 종일 그냥 걸려 있는 것 등을 보면서 시골

촌놈인 나는 그야말로 기가 죽었지요.

 

하루는, 상담이 다 끝나고 호텔에 돌아간 코쟁이 바이어에게 나는 새로 만든 신발 견본

한족 들고 가서 보여주고 구매계약서에 서명만 받아오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일을 다 끝내고 막 방을 나오려고 하는데, 아까부터 서류를 검토하며 암소 똥꼬를 본

숫소처럼 그 분이 혼자서 히죽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기에 나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바이어가 들려줬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포복졸도 할 이야기인데, 고향 선배를 통해

서울의 호텔에 어렵게 취직한, 이제 막 시골에서 상경한 70년대 초,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힘 있는 고향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온 이 젊은이는 영어가 무척 서툴렀지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요상한 모양과 색상의 우스꽝스런 호텔 제복에, 차양 없는 둥근 빵 모자를

쓰고, 호텔 담당 층 복도에서 투숙객의 방 배달 ( 룸서비스 ) 호출을 대기하며 서 있는 게

이 젊은이의 일이었습니다. 이때 우리 회사의 바이어가 방 배달 서비스를 받고 싶으니

호텔 보이를 보내 달라고 호텔현관 접수부에 전화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방 배달

총책임자로부터 구내전화로, 어서 그 방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고 이 젊은이는 바이어의

방에 들어가서 주문받을 자세를 취했습니다. 경험이 없는지라 두 다리는 달달 떨렸습니다.

취직해서 바로,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치는 객실 코쟁이 손님. 머리가 노랗고 눈알은 무릎도리에

종기 났을 때 보았던 고름 같고, 걷어 부친 팔에는 웬 털이 그렇게 많은지, 저것이 사람이다냐?

짐승이다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해고당해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 이 젊은이의 긴장감은 상상이 되겠지요.

 

우리 회사 바이어는 아주 점잖은 영국출신이라, 비록 호텔보이 앞이지만 엄청나게 공손한

표현을 써서 커피 한 잔만 갖다 달라고 청했다 합니다. 아마 예를 들면, “ Coffee, one! "

이라던가, 조금 길게 한다 해도, " One cup of coffee " 라고 하면, 그 호텔보이는 눈치로라도

알아들었을 텐데, 이 간단한 주문을 그 바이어는 영어로 이렇게 길게 말했나 봅니다

 " 젊은 양반! 이렇게 벼락같이 금방 달려와 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웬일인지 몸이 안 좋은 것

같군요. 아마 커피 한 잔을 먹어야 될 것 같네요. 나는 매일 이 시간에는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요. 대단히 죄송하지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걸 한 잔 나에게 갖다 주실

수 있겠는지요? 수고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 Mister!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coming so quick, like with a

thunderlight speed. I am afraid that I am not feeling well. I think I need to have

a cup of coffee, 'Cause I am so used to having a cup of coffee at this time of

everyday. Could you please bring it up to me soonest possible? Thank you

so much indeed for your help ".

 

커피 한 잔 갖다달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니 알아들을 재간이 있나요? 영어가 아니라

니미럴, 영어 할배를 전공했다 해도 알아듣기가 어려울 건 뻔하지요. 그것도 투박한 영국식

억양으로 말입니다. 그 호텔 보이는, " Yes, sir! " 해놓고 방문을 나와 복도 끝에 쪼그리고

앉아 객실 손님이 요청한 내용이 무언지,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그 방에 들어가서, " 손님! 아까 주문하셨던 게 무엇이었지요? "

라고 되물을 수도 없었고, 또 그런 사실이 들통 나면 당장 짐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고. 누구에게 그 뜻을 물어보려 해도 그렇게 복잡하고 긴 문장을 외워 한 번에 나불나불 할

자신도 없었고요. 그렇게 망설이며 고민하는 사이, 바이어는 기다리던 커피 배달이 안 오자

다시 호텔 접수부에 전화를 해서 채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비의 객실 담당 총책은 해당층

구내전화를 눌러 이 호텔보이를 다시 불러, 아니, 여태 그 방에 안가고 무얼 하고 자빠졌냐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어서 아랫도리에서 엇박자 방울소리가 나고 젖은 눈썹이 휘날리며

신발바닥에서 연기가 일고 고무탄내가 나게 뛰어가 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다시 그 방에

들어간 그 호텔보이에게, 그 바이어는 영국출신답게 감정을 죽이며 아까보다도 더 까다롭고

더 긴 문장을 써서 길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호텔보이는 다시 “ Yes, Sir! ” 라고 힘차게 대답하고 방문을 나왔지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한 영어단어 몇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될 거라는 선배의

설명이 야속했습니다. 고향 떠나올 때 서울 가서 돈 벌어 오겠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온

게 크게 후회되었습니다. 다시 복도 끝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고민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 코쟁이의 말은 무엇이 이름씨 ( 명사 )이고, 어디가 움직씨 ( 동사 )이며 무엇이 그림씨

( 형용사 ), 무엇이 어찌씨 ( 부사 )인지 전혀 분간이 안 갔습니다. 움직씨도 현재를 말하는

것인지, 과거를 말하는 것인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 것인지, 오지 못 할 먼 미래를

말하는 건지 오리가 무중이었습니다.

 

한편, 객실의 그 바이어는 커피 한 잔 주문한지 30여 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이제

인내심을 잃고 호텔 현관의 방 배달 서비스 총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자기 방으로 들어와 보라고 큰 소리로 일갈을 하고는 전화기가 부서져라 패대기쳤습니다.

영국 사람이 맨날 착한 게 아닌가 봐요. 방 배달 서비스 총책이 득달같이 달려와 그 방 코쟁이

앞에 섰습니다. 불쌍하게도 그 객실 서비스 총책도 몇 단어와 단답형 영어가 전부였지요.

지금껏 이 바닥에서 그걸로 버텨온 게 용합니다. 그냥 간단하게, One Coffee! 라고 하면 될 것을

그 코쟁이 바이어는 아까부터 일어난 모든 상황을 길게 다시 한 번 더 설명하고서는 이렇게

엉터리 같은 호텔은 처음이라는 듯,

 

" I want coffee! coffee! coffee! I mean coffee! coffee!! "

 

라고 절규하며 자기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팡! ! 치고, 엄지와 검지로 커피 잔 고리에

손가락을 끼어 마시는 시늉으로 연달아 목을 뒤로 까딱까딱 거렸습니다. 나중에는 커피를

못 마시면 이제 금방 죽어가는 것 같은 시늉도 했습니다. , 정말 커피가 미치도록 마시고

싶었지요. 그러자 방 배달 서비스 총책임자는, " Yes, sir! " 라고 하며 방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방 배달 서비스 총책이 커다란 쟁반에 커피를 가득 담아 오는 것을 보고

그 바이어는 뒤로 홀랑 자빠졌다가 일어나 앉으며 그 방 배달 서비스 총책에게 물었습니다.

 " 세상에! 당신은 어째서 커피를 다섯 잔이나 가져 왔나요? 일주일분인가요? ". 그러자 방

배달 서비스 총책은, 내가 매니저를 그냥 땄겠느냐? 라는 듯, 커피 다섯 잔을 탁자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쟁반을 든 왼손은 그냥 놔둔 채 쟁반을 들지 않아 자유로운 오른 손을

들어 손가락을 꼽으며,

 

" 당신이 커피, 커피, 커피.. 또 커피, 커피 이렇게 총 다섯 잔을 주문했쟎아요!

, 이렇게 다섯 잔!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