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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평생 달고 살아라 ! 등록일 2016.09.28 05:1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12




평생 달고 살아라 !

 

내려! 내리라구! 내 말 못 알아들어? ” 성질이 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5호선, 지하철이 고덕 역에 이르러 멈추자마자, 그리고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젊은 놈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어 움켜쥐고 그 놈을 지하철 승강대 대기선 노란선 바깥으로 패대기침과 동시에 나도 같이 딸리어나가 고꾸라졌다. 넘어지는 그 놈에게 이 차 충격을 주기위해 놓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나와, 내가 움켜쥔 자기 멱살을 풀어보려고 사력을 다해 내 손을 죄여오며 용을 쓰고 있는 그 놈의 손목 힘이 상승작용을 해서 둘 다 엄청난 충격으로 바닥에 또 나가떨어졌다. 그 젊은 놈의 한 쪽 구두는 굴러 넘어지는 충격에 노란 승객 대기 의자 밑으로 나가 내팽개쳐졌고, 그 때문에 그 젊은 놈의 쥐색 양말 복상씨 부위에 싸구려, 빨간 바탕에 하얀 실로 자수된 비와이씨 영문철자가 그대로 드러났다.

 

   지하철이 승차위치에 진입해 들어와 멈추자 영문을 모르고 승차하려고 하던 고덕역 승객들이 혼비백산 놀래서 뒷걸음질을 쳤고, 평상시처럼 잘 차려입고 아침 출근길에 올랐던 일부 젊은 아가씨들은 이 해괴한 아침의 변괴에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자기 입 쪽으로 가져갔다. 어느 아가씨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으로 가져간 핸드백 든 손을 내리지 못해 손끝에 매어달린 핸드백 줄이 앞뒤좌우로, 물구나무서서 두 다리가 하늘로 치솟은 브레이크 댄서 두 다리처럼 요란스럽게 요동쳤다. 아직도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아니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자기가 처한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날 궁리로 요동치고 있는 젊은 그 놈을 나는 유도의 굳히기 자세로 몰고 갔다. 멱살을 잡은 오른 손을 기역자로 꺾어 그 놈의 목을 누르고, 왼손으로는 그 놈의 목덜미를 한 바퀴 돌려 잡아 한 치 한 푼의 요동도 못하게 목을 굳히고서, 버둥거리는 두 다리에 걸리지 않게 나는 오른 다리와 왼 다리를 번갈아가며 젊은 그 놈의 목을 축 삼아 빠른 속도로 원을 빙빙 잡아 돌렸다. 요 며칠 장맛비가 계속되어 눅눅해진 지하철 대리석 바닥의 습기 머금은 냉기가 바닥을 쓸다시피 빙빙 돌고 있는 내 허벅다리에 고스란히 전해왔다. 탱천한 분노로 씩씩거리는 내입에서 단내가 났고, 젊은 그 놈의 숨소리는 쾍! ! 머리핀 삼킨 집 앞 마당의 오리새끼 토악질이었다. 젊은 그 놈이 더 이상의 반항보다는 현재의 싸움판 형세를 보건데 이제 항복, 또는 무저항의 의사 표시가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는지, 아니면 잡힌 멱살에 호흡을 할 수 없어 무조건적 항복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내 손목을 잡았던 두 손에서 더 이상 힘을 가해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공익요원이 달려오고, 넥타이 없는 하얀 반팔 소매셔츠를 입은 역무원도 뛰어왔다. 그들은 우리 둘 사이에 구둣발을 구겨 넣고 둘을 떼어놓는 수순을 시작했다. 나는 나의 공격적 자세에서 수동적 자세로의 변환을 그리 쉽게 할 마음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힘으로는 저 젊은 놈에게 당할 수가 없음을 잘 안다. 그래서 벼락같은 선제공격 말고는 나에게 승산이 없음을 잘 안다. 그랬기 때문에 아까 전철 안에서 그 놈에게 앞, 뒤 볼 것 없이 멱살을 움켜쥐고 바닥에 패대기를 친 것이었고, 운 좋게도 내 작전은 맞아 떨어졌다. 그는 내 지략에, 내 선제공격에 제압되었다.

 

   이제는 되었다. 나를 둘러싼 이 많은 선량한 시민은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다. 내 정의가 승리하였다. 이제 비록 파출소에 끌려가서 또다시 진술서를 쓰더라도, 보호자 호출을 받아 내 아내가 허겁지겁 달려와도 할 말이 있다. 아이고, 언제 철나? 라는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달달 외울 것 같은 아내의 질책에도 할 말이 있다. 우선 나는 한 군데의 상처도 없이 이 일이 마무리 되어질 것 같다. 나는 뜯어말린, 떡대가 좋은 역무원의 등 뒤에서 급히 옷매무시를 마쳤다. 젊은 그 놈은 지하철 공익요원 뒤에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퍼질러 앉아 왼 손, 오른 손 번갈아가며 자기 목을 쓸고 있다. 내가 얼마나 쌔게 잡아 비틀었는지 젊은 그 놈의 목 언저리는 벌겋게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출근승객들은 아가리 벌린 지하철 안으로 다 들어가고, 승하차 문이 닫히자 멈춰 섰던 지하철도 출발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지하철 떠난 플랫폼에 믿지 못할 만큼 조용한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그 역무원이 뒤 돌아서서 나에게 물었다. 뭡니까? 지금? 나이께나 드신 양반이.. 어찌 된거요? 그러자 나는 대답했다.

 

   “ 나는 여기 이 동네에 사는 박 복진 이오. 내가 출근하려고 앞 역에서 전철을 탔는데 거의 모든 자리가 손님으로 찼지요. 그런데 저 젊은 놈의 옆 자리가 비어 있어 그리로 갔지요. 내 평상시 같으면 앉으라고 해도 앉질 않지요. 그런데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어 마저 읽으려하니 자리 욕심이 났었는데, 저 젊은 놈의 옆 자리는 차량 설계상 정상적인 성인 다른 한 분의 충분한 자리로 확보되어 있었지요, 즉 엉덩이 자리로 불룩한 게 분명 다른 한 손님이 앉게 되어있어 그 자리로 가서 앉고자 하는 의사 표시를 했지요. 그런데 저 젊은 놈이 자기 두 다리를 있는 그대로 다 벌리고 있어 내가 손짓으로 그 자리를 가리키며 앉고자하는 제스처를 다시 한 번 더 했는데도 벌린 다리를 오므린다거나, 앉은 자기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들썩 미동을 해 주며 나중에 앉는 손님에게 예의를 보이질 않고, 싸가지 없이 자기 보던 메트로 무가지신문에 시선을 박고 있는게요.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여기 좀 앉으려하니 다리를 좀 오므려 주고 엉덩이를 자기 쪽으로 조금만 옮겨 달라는 뜻으로 내 오른 손바닥을 펴서 그 자리를 향하게 했지요. 그러고 나서, 좀 더 적극적인 내 의사표시로 내 엉덩이를 그 좁은 의자 끝에 살짝 걸쳐 끼어 올려놓고 다시 저 젊은 놈을 바라보았지요. 그래도 저 젊은 놈은 미동도 않고, 마치 이 자리에서 밀리면 나는 죽는다! 라고 믿는 사람처럼 눈곱만큼의 예의를 보여주지 않았지요. 간신히 엉덩이 끝을 올리고서 약간씩 미동을 하며 몇 번인가 나는 내 엉덩이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 부자연스런 자세를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승질이 나서 발딱 일어서고 말았지요. 나는 이런 놈은 내가 버릇을 고쳐주어 이 나라의 사회정의를 바로 잡아야한다고 작심하고 이 놈을 다음 정거장에서 멱살을 잡아 끌어내게 되었지요. 아니, 옆에 손님이 오면 잠깐 눈을 들어 눈웃음으로 그 분 앉을 자리를 살펴보아주는 기본적인 예의를 차려 준다거나, 벌렸던 자기 두 다리를 약간이라도 오므려 주는, 모르는 이웃이지만 그 정도의 예의는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 

 

......

 

   나는 지금 달리는 전철 안, 전철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내 앞에 앉아있는 한 젊은 놈을 대가리가 뚫어져라하고 내려다보며 이런 전투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이 놈을 다음 정거장에서 패대기쳐버릴까? 정말로 오늘 아침 한 번 일을 내어 볼까? 내 모가지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놈의 벌린 두 다리가 다음에는 저절로 오므라지게 한 번 혼을 내어줘 볼까? 라는 고민으로 이 놈과의 전투장면을 상상하며 벌써 네 번째 정거장을 그냥 보내고 있다. 나의 상쾌한 월요일 아침, 앉은 자리에서 두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저 쩍벌남 젊은 놈, 저 놈. 내 출근길을 망쳐놓은 저 놈, 두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는 저 젊은 놈. ,. ,....

 

   나는 결국,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나 혼자 속으로 울분을 삭이며, 힘없이 전철 손잡이에서 내 손을 떼고 천호역 환승역에서 내려 8호선으로의 환승을 위해 환승계단을 무겁게 올라갔다. 그리고 아까 내가 서있던 자리 앞에 앉았던 쩍벌남 젊은 놈에게, 지금쯤 벌써 한강을 건너갔을 그놈에게, 내뱉었다. “ 에라이, 불알 옆에 뽀드락지 나서, 그 뽀드락지 평생 달고 살 놈아!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