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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인사동에서 ( 2 ) 등록일 2016.09.28 04:5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54





K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인사동에서 ( 2 )

 

   일월 오봉도, 인사동의 남인사 마당 상설무대인 일월오봉도 공연장에 좌정을 하고, 나를 포함 13명 연주자가 상장구의 첫 가락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이지만 인사동 골목의 인파에 내 시선이 갔다. 서로 어깨를 비비듯이 많은 인사동 인파가 쉴 사이 없이 흘러가고 흘러온다. 그들의 눈에서 낯선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읽는다. 그러겠지. 우리 인사동이나 한 번 가 볼까? 하고 심심파적으로 나온 사람들일테니까.

 

   무대에서 무언가 곧 있게 될 것이라는 분위기에 우리가 있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며, 여기서 기다리다가 공연을 보고가기로 한 행인, 그냥 가기로 하는 행인, 그런가 하면 일행 둘이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연신 팔목시계를 보며 심각하게 숙의하는 행인. 이 모두가 한 사람 빠짐없이 내 시야에 잡힌다. 느리게, 약간은 어수선하게 객석이 점점 채워진다.

 

   짧은 시간동안 이런 저런 생각으로 상장구의 첫가락 신호를 기다리는 바로 이 때에, 반가부좌를 틀고 그 앞에 장구를 놓은 내 신체의 하초에 참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와! 일월오봉도 연주 무대의 바닥은 반질반질 질 좋은 대리석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대리석은 오늘 아침 7시부터 올라 온 강렬한 팔월 태양에 지금까지 장장 11시간여 달궈져오고 있었다. 자연 집광으로 달궈진 그 대리석과 접지면적이 제일 넓은 엉덩이부터 온돌의 열기가 내 하초 전 지역으로 무지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한다.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자동으로 오른쪽 엉덩이가 들려지고, 안 들려진 왼쪽 엉덩이의 강력한 항의로 이번에는 오른 쪽이 내려오고, 왼쪽이 급박하게 순서를 바꿔 들려졌다.

 

   세상에나! 이렇게 달궈진 대리석 위에 어떻게 연주자들을 앉혀 놀 수 있을까?

더구나, 사물 연주자는 전통적으로 얇은 하얀 바지를 입어야하기에 그 안에 색갈이 있는 그 어느 내의도 허락되지 않는 관계로, 달궈진 대리석의 열기는 거침없이 그냥 하초로 전달되어 하초의 제일 연약한 부분, 낭 주머니를 사정없이 달궈내기 시작했다. 죄 없는 그 주머니가 무슨 힘이 있어 대리석의 열기와 싸워 제 낭을 보존한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해져오는 열기를 피해 나몰라 자꾸 옆으로 늘어져 도망치듯 퍼지는 수밖에. 그러자 나의 낭 주머니 표피 군사는 넓힐 수 있는 최대의 넓이로 퍼져 녹두빈대떡보다 더 얇아진 채 일부는 내 엉덩이 밑에 깔리기까지 하였으니, 지금부터 나는 내 신체의 어느 부분, 대롱대롱 달려있어야 할 낭 주머니를 내 엉덩이 밑에 넓둥글게 깔고 앉아 연주를 해야 할 판이다.

 

   K 시인아, 나는 어려움에 강하다. 내가 즐겨하는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정상적인 날씨보다는 비바람 때리고 눈보라 휘몰아쳐대는 극한 날씨에 더더욱 빛을 발한다. 이틀 밤낮을 달릴 때보다 5일 밤낮을 달릴 때 희열을 더 느낀다. 달궈져서 엉덩이가 저절로 왼쪽, 오른쪽 방아찧듯 교대로 들썩거리며 하는 연주가 되니 야릇한 도전의식이 더 살아난다. ! 에 왼쪽 엉덩이, ! 에 오른쪽 엉덩이. 쿵왼, 딱오, 쿵왼, 딱오... 덕분에 그토록 걱정했던 나의 무대공포증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 기냥, !, 낯빤대기 주문도 욀 필요없이 부드럽게 상장구 신호를 따라 내 순서에 승선, 안대미 가락에 내 몸을 실었다. 달궈진 빈대떡 자락도 저절로 가락에 맞춰 심해의 가오리 귀때기처럼 펄럭거렸다.

 

   나는 이 공연 전에 가까운 친구에게 말했었다. 이번 공연에 동영상 촬영이 있을 것이니 그 동영상을 보여주겠다, 라고 말했다. 아직도 사물에는 노란 햇병아리지만 그래도 연주복장을 갖추면 그럴듯해 남에게 보여줘도 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누구보다도 나의 40여년 펜팔인 미국의 페기 할머니가 나의 사물장구 공연모습을 궁금해 했기에, 이번 동영상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래서 평소 연습 때 보다 동작을 조금 더 크게, 과장시켰다. 어떻게, 어떤 가락을 했는지도 모르게, 이렇게 나의 인사동 첫 무대를 어렵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동영상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기를 일주일 여, 그 동영상이 드디어 거미집에 ( Website ) 에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거미집에 노크를 해서 거미로부터 동영상을 보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러자 나는 뒤집어졌다. 내 일생, 일대, 최대, 최초 행사인 인사동 연주가 이렇게 끝나다니. 내 동영상을 손꼽아 기다리는 미국 버지니아주 페기 할머니를 이렇게 실망시키다니..

 

   인사동의 일월오봉도에서 연주된 내 사물연주곡, 안대미 맞춤 연주자는 13 명이었으나 무대 하단에 고정됐던 동영상 카메라에 잡힌 연주자는 내가 빠진 12명뿐이었다. 세 줄로 앉았던 연주자들은 앞 사람을 피해 대각으로 사이, 사이에 자리 잡는 게 상식이었으나, 나는 첫무대로 흥분한 나머지 앞 연주자 바로 등 뒤에 좌정하는 바람에 앞 그 분에게 가려 내 모습은 없었다. 장구의 열채와 궁채를 내려치는 왼팔, 오른팔만 연신 풍채 좋으신 그 여성 연주자분의 등 뒤에서 안타깝게 허우적거렸다. 마치 몸체는 하나인데 팔다리가 여러 개 되는 태국의 어느 민속 신앙 춤 같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K 시인아!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게 울트라마라토너이다. 끈기를 가지고 마지막 끝 장면까지 동영상을 지켜보던 내가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나왔다. 내 얼굴이 나왔다. 풍채 좋으신 내 바로 앞 연주자께서 한참 궁채, 열채로 신나게 사물을 연주하시다가 그만 궁채를 놓쳐 그 궁채가 무대 밑으로 날아 떨어져갔다그러자 그 연주자는 황급히 일어나 무대 밑으로 내려가 허겁 궁채를 집어와 다시 자리 잡고 연주를 계속했다. 이 분께서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고정되었던 동영상 카메라에 내 얼굴이 잡혔다. 그 시간이 아마 일초의 반이나 될까? 나의 인사동 첫 무대, “ 기냥, 확 낯빤대기 오기 무대는 이렇게 초의 반도 안 되게 현장 기록되었다. 팔월 염천 무더위, 얇디얇은 녹두빈대떡을 엉덩이 밑에 깔고 치룬, 역사적 서울 인사동 공연 그날은, 2011 8 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