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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정말요? 등록일 2022.07.22 04:43
글쓴이 박복진 조회 288



정말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102022년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도 수많은 사연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가 또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운이 좋게도 매년 이 현장에서 10여 년을 같이 호흡하고 같이 뒹군 나의 입장에서는 어느 사연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나는 이게 팔팔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 생명체들이고, 이게 그 존재감을 일깨우는 순간들의 엮임이라고 여긴다.

 

정확한 출퇴근을 위해 분, 초 단위로 도착되고 출발하는 지하철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맺는 도회지 사람들. 오늘은 월요일, 앞으로도 4일을 더 견뎌야만 그나마 주말, 휴일의 여백을 찾을 수 있다는 사람들. 희희낙락 하루, 하루를 즐기며 단맛만 쫒아서 쪽쪽 빨아먹어도 모자랄 내 삶을 이렇게 더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전에는 없었던 내 내면의 작은 반란을 위해 몽골 고비 울트라호에 승선했다. 선한 낙타의 눈망울을 보고,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들을 보며, 360도 지평선의 탁트임 그 정중앙에 나를 세워보고자 지금 여기 몽골 땅에 우뚝 섰다. 대나무가 밋밋하게 줄기만 위로 쭉 뻗어 있고 마디가 없다면, 그 마디 마디마다 새로운 가지가 생성되어 새로운 잎이 없다면, 그 대나무는 무특징으로 아무의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내 삶에 대나무의 그런 마디 하나 만들어 보고자 오늘 여기에 오신 용감하신 몽골 고비 울트라 마라톤 참가자 전사님들,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참가 대원들이 현지의 불편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며 대회가 무르익어가기 시작되는 910일의 초반인 오늘은 대초원과 숲속길 50km를 달리는 날이다. 사방을 둘러보아서 눈에 거슬리는 게 단 한 곳도 없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다. 오늘 여기는 내가 이렇게 서서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날이고 그런 곳이다. 참가자분들은 광대한 야생의 푸르름이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이름이 있긴 하겠지만 그 누구도 불러주질 않아 이름표가 없는 초원의 야생화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을 것이다. 노련한 수채화 화가가 빠른 붓놀림으로 한 번의 쉼이 없이 긋고 지나간 산과 들, 구릉의 곡선이 이렇게 돋아 보일 줄 몰랐을 것이다. 그야말로 환장하게 아름다운 자연의 대합창, 그것은 뭐라 표현이 안되는 극최상의 화음이었다. 그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는 죽어있는 피사체가 아닌, 멈췄으나 움직이는 위대한 그 무엇이었다. 이런 대자연 속에 묻힌 나의 영혼도 이미 육체를 이탈해서 허공을 유영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이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분명 있으나 더 확실하게는 없었다.

 

주자들이 숲과 초원을 지나, 모래 언덕을 지나 살찐 들풀의 융단을 지나 야생화가 지천인 계곡을 지나 하나 둘씩 완주선을 밟고 있었다. 완주선을 밟은 주자들은 표현키 어려운 성취감으로 약간의 흥분을 보이며 신발을 벗어 신발 코를 하늘로, 신발 뒷축을 땅으로 향하고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을 퍽퍽 부딪히며 신발 속에 이입된 몽골 고비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신발을 털고 있는 그 분의 시선은 방금 두 발로 달려온 오늘 코스의 칭송을 들어주는 동료의 눈과, 탈탈 털리고 있는 좌우 신발에게 공평하게 번갈아서 분배되었다. 신발 속에서 털려 나오는 모래, 먼지는 방금 뛰어서 지나온 곳곳의 아름다운 사연 바로 그 덩어리였다. 눈으로 훔쳐서 가슴으로 예까지 담아온 그것이었다. 그 분이 지금 들려주는 몽골의 대초원, , 나무, 모래 언덕의 실체는, 단순히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부여잡고 두고두고 어루만지고픈 보석이었다.

 

그때 어느 한 여성분이 완주선으로 뛰어 들어왔다. 먼저 들어와 신발을 털고 있던 주자들과 동료들은 그분의 완주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완주 아치와 테이프가 있는 곳으로 모두 우르르 몰려갔다. 3일 낮과 밤 동안 젖을 굶은 새끼 양떼들이 엄마 젖을 찾아 몰려가는 것처럼 좌우 분간 없이, 펴든 손부채살처럼 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몰려가 그 분을 에워쌌다. 그러자 그 분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크게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가렸던 안경 위 한 손을 내려 안경알 속으로 밀어 넣어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다시 또 안경 위에 손을 얹자 안경 아래로 눈물이 다시 흘렀다. 주위 동료들이 이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등만 토닥거렸다. 그래요, 많이 힘들었지요? 이 코스는 정말 고난이도에요. 내일부터는 좀 쉬울 거래요. 뭐 마실 것 갖다 드려요?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려요! 그러면서 그 분들은 방금 들어온 이 여성 주자분에게 뭐라도 못 갖다 드려서 미안한 듯 자꾸 자기 손을 비볐다. 어느 분은 왜 이런 아리따운 여성분에게 그런 시련을 주었느냐는 듯, 앞에 펼쳐진 초원의 소실점에게 표독스런 눈길을 주기도 했다. 광활한 몽골 대초원에서 흘리는 여성분의 눈물, 그것도 터진 봇물처럼 크게 소리내며 엉엉 우는 그 분의 눈물, 영화의 클라이막스 한 장면처럼 이분의 얼굴이 크게 확대되어 스크린 전체를 집어삼켰다. 내 스스로의 감정으로 숙연해진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서 드릴 위로의 말씀을 준비했다. 많이 힘들었을꺼에요. 남성분들도 이 코스는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제한 시간도 짧고, 오늘은 또 온도도 높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구간도 있고 해서 많이 힘들었을거에요. 그러면서 나는 옆으로 돌아간 등번호 2205를 바로 잡아드렸다. 그러자 그 여성분이 아직도 울먹거리면서 거기 그 앞에 서 있던 우리들에게 말했다.

 

저요, 힘들어서 운 게 아니에요. 제가 37km 지점쯤 왔는데, 거기가 너무 예쁜거에요. 내 혼을 다 앗아가 버리게 아름다운 거에요. , 정말 이런 풍광은 처음이에요. 그래서, 저요. 거기 서서 펑펑 울었어요. 저요, 진짜에요. 힘들어서 운 게 아니에요. 너무 예뻐서, 너무 아름다워서, 울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거기서 울었어요. 그리고 여기 이 완주선을 바라보면서 거기 그 곳이 생각나서 또 운거에요. 저는요, 지금 그곳에 또 가면 또 울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 슬래머

 

2022.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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