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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산책 (2) 등록일 2019.11.08 06:27
글쓴이 박복진 조회 282
  

산책 (2)

 

아가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기다림의 초조함을 달래지 못해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길을 달리고 있었다. 집에 그대로 앉아서 서울의 산부인과 병원의 전화만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전화를 받고 너의 탄생을 알았다. 아가야, 너는 어느 별에서 어느 누가 보내 우리에게 왔을꼬? 나는 땀에 젖은 손으로 감격의 눈물을 훔치며 뛰던 걸음을 걷는 자세로 바꿨다가 다시 그대로 멈췄다. 차량 왕래가 없는 시골 지방도로 갓길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렀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방긋방긋 나와 눈을 맞추고, 내 까꿍! 소리에 까르르 웃음을 지을 때 나는 자지러졌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가 어서 커서 첫걸음을 떼고 아장아장 걷는 날이 왔으면, 어서어서 말을 익혀 나하고 대화를 하는 날이 왔으면 하고 소원했다.

 

아가야, 너는 이제 자라서 두 발로 걷더니 지금은 걷기라니, 잔디 마당을 뛰어다니며 줄넘기도 한 번에 두 개씩이나 한다. 나는 네가 올 때마다 벽에 착! 붙게 세워놓고 삼각 뿔잣대를 찾아 머리 위에 올리고 벽에 키높이 표시를 하곤 한다. 이런 할아버지의 기쁨을 아가야, 너는 아는지 모르겠다.

 

말문이 트여 하비가 할아버지가 되고 맘마가 밥이 되고 무이 물 좀 주세요! 가 되어 내 말귀를 알아듣게 되자 나는 너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게 너무 많아졌다. 아가야, 여기 그네 의자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보거라, 무슨 소리가 들리지? 그러면 아가야, 너는 말했지. 새소리, 찌찌찌, 호르르, 삐삐삐.. 자꾸 더 들어보라고 하며 눈을 더 감으라고 하면 아가야, 너는 말했지. 할아버지, 나는 눈을 떠도 들리거든요! 이제 눈 뜰래요. 그러면서 뽀얀 얼굴로 나를 흘겨보곤 했지. 보여주고 들려줘도 더 보여주고 더 들려주고 싶은 세상 만물 아름다운 것들.. 아가야, 어서어서 깨우쳐서 네 스스로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네 가슴 가득히 담아 보거라. 내가 그동안 본 그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네 눈으로 보고, 네 가슴으로 느끼고, 깨우쳐 담아 보거라!

 

아가야, 착한 아가야! 오늘 너는 말했지. 우리가 둘이서 집 앞 작은 개천을 따라 산책을 할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서 말했지. 아마도 자라서 처음인, 네가 스스로 느낀 첫 번째 감동, 너무너무 예뻐서 나의 숨이 멎을 것 같구나.

 

할아버지, 저기 저 해 좀 봐요! 산 위에서 아래로 막 들어가요. 빨갛게 바뀌면서 막 들어가요. 옆에 구름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나도 신이 나서 말했지. ‘그렇구나, 해가 산 아래로 들어가네. 옆의 구름들과 헤어지기가 싫은가 보네. 엄청 느릿느릿 내려가네. 구름들이 해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며 말하네, 해야 가지마, 더 놀자. 그러니까 해가 말하네. 아니야, 조금 있으면 캄캄해지고 그러면 난 무서워, 얼른 갈래. 그러자 아가야, 네가 말했지. 할아버지, 구름이 말해요. , 바보야, 네가 안 가면 안 캄캄해지잖아. 우리 더 놀자니까!

 

어스레하기 전 산촌 동네 초입에서 우리 둘의 산책이 이어진다. 태어나서 처음이 분명한 노을의 황홀함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못 옮기는 6살 손녀의 고사리손 체온이 따스하다. 늦은 깻단을 태우는 산촌 농가의 연기가 앞산 아래 둔부에 기다란 띠를 만들고 있다. 그 위에 노을을 보며 해와 구름과 나눈 우리 손녀의 대화가 또박또박 줄을 맞춰 얹혀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